놀이속에 숨어 있는 비밀 - AP
- woolgachoi
- 2017년 1월 11일
- 2분 분량
최울가가 지향하는 작업의 가치관은 일종의 원시적 모랄리즘의 재발견이라 할수 있겠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토해낼수 있는 무의식의 장르에 속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논리적 사고의 표현으로 근접됨에 따라 일상의 자유스러운 표현을 더욱 더 복잡한 이론으로 전개되어 다른 어떤 장르 보다 힘든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보고 느끼는 감성적 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그가 자유스러움을 구가하는 의식의 힘은 즉 그의 어린 시절의 환경적 요인으로 하여금 끝없는 궁금증과 그것들과의 놀이를 통하여 빚어낸 하나의 정신적 부산물이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어느 정도의 초기 과정을 거치고 본격적인 본인의 의중을 반영하려고 할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일종의 자폐성 노스텔지어 일수가 있는것이다.
최울가에게 있어서 지나간 과거의 의식은 현실적 가치 기준에 따르려하지 않고 뒤돌아 봄으로써 느끼는 행복감, 그리고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속에 안주함으로 서 더욱 더 현재나 미래에서 멀어졌을때 예술가에게 나타날수 있는 현상이 지금의 그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수있겠다.
이때에 나타나는 그의 의식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유아적 순수성을 느끼거나 우리가 꿈꿔왔던 정신적 자유를 함께 느낄수 있는데 그것은 사회의 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오직 본능에서 분출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것을 부정 할수 없다.
최울가의 있어서의 그림은 일종의 놀이라고하는 장르에 해당되지만 또 그림의 내면에는 사실적 표현이 숨어있다.
사진 처럼 똑같이 그리는것 만이 사실이 아니다.
그것른 기술적인 요소일 뿐이다.
장 뒤 뷔폐의 그림도 내면적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피카소도 프란시스 베이컨도 발튀스도 바스키아도 어쩌면 사실적 표현을 어떤 방식을 재해석한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 좋은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때 예를 들어 어머니와 동생을 그릴때
본인은 분명히 사실에 기초를 두고 그렸고 본인도 그것이 엄마와 동생의 똑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눈에 보여지는것만의사실적 표현의 전부가 아니다라는것이다.
아이에게서의 그림은 일종의 무의식적 놀이에 불과하고 그런 행위를 통해 본인이 기뻐하고 즐거워할것이며 그어떤 외부의 시선을 의식치 않고 그림을 본인이 느끼는것으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은 더 없이 자유스럽고 맑은 시냇물 같은 느낌을 받는것이다.
본인의 말처럼 “인간은 끝없는 놀이에 의해서 기뻐하고 놀이의 행위를 위하여 일하고 즐겁게 놀기 위하여 경제적 가치를 얻을려 한다”는것이다 결국에는 인간은 즐거운 놀이를 탐닉하기 위함이고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라고 말함으로서 세상의 모든 일은 놀이 문화로 이루어져 있음을 주장하는 작가는 즐거운 놀이 자체의 의식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서 진지하고 철학적이면서도 보수적 성향의 아카데믹한것을 거부하는 그러니까 지식으로 만들어진 작업은 본인과의 부합되는 일치성을 찿을수 없다는것이다
최울가,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그림의 세계는 무엇인가?
그가 말하는 첫 번째 모티브는 그옛날 문자가 존제치 않고 물질 문명과 정치적 집단의식의 가미된 사회로 들어서기전의 무의식적 사고방식이면서도 느낌으로만 정화된 감정이 살아 있을때의 그상황으로서 행위 , 필요하고 보여지기를 원함이 아닌 놀이로서, 즐거움의 표현으로서의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행위,행위자체가 그어떤 의식주를 위함이 아닌 자신의 육체적 울림이나 기쁨을 위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행위,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 특히 문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으로서는 마치 깊은 산속에서 맑고 투명한 샘을 발견한것과 같이 보는 이들의 정신을 즐거움 놀라움으로 극대화 시킬수 있는 영상으로 다가올것이리라 생각되며 아울러 최울가 본인도 그러한 부분을 찿아감에 있어서 성격이나 환경적 요인 지나간 삶의 행적들은 그곳으로의 행로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진행이 오늘날 그와 맞아 떨어진 그림을 그리게 되지 않았나 사료된다.
어린시절 모든 것이 못마땅했던 어느날 자주 울면서 집 밑에 작은 공터 흙위에 무의식적으로 그렸던 그림들이 어쩌면 오늘의 작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비밀의 통로가 될수밖에 없었고, 그 길고 험한 통로속에는 지금도 진행중인 무중력적 놀이들이 가공되고 잇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가 지향하는 놀이적인 삶의 의식은 절대 부정하지 않으며 철저히 현실로서도 인정되는 바가 크며 즐거움을 찿아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간정신으로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모티브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그런 인간의 즐거운 놀이적 의식을 과연 그림으로 어떻게 풀어 낼지는 여전한
과제가 아닐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그어느 작가 상관없이 우리는 그곳으로 갈려고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과제에 도전하는것을 멈춰는 않된다.
이지구상에 단 한곳에 존재하는 아마존에서 그를 부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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