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이 그려내는 그림-최울가의 회화 -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 woolgachoi
- 2017년 1월 11일
- 4분 분량
그림은 놀이에 기반 한다는 사실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그런 체험으로 부터 그림을 시작했고 즐겼으며 그 시간을 만끽했다. 그것은 도화지뿐만 아니라 땅바닥과 벽, 그리고 눈에 띄는 모든 평면에 시술되어 확장되어 나갔다. 빈 평면은 호기심과 상상력, 놀이를 충족시켜 주는 매력적인 장이자 흡사 운동장과 같은 크기로, 경험으로 다가온 공간이기도 했다. 사실 학교 운동장이란 공간 역시 놀이와 그리기가 겹쳐있던 바닥이다. 그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려나가면서 혹은 발자국과 이런 저런 자취들로 형상을 만들어나가던 기억들은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흙의 질감과 촉각을 거느리고 막연하나마 모종의 이미지를 만들고 각인하던 놀이가 미술의 원초적이고 생생한 체험이리라. 그렇게 크고 맑은 눈들과 작은 손들은 벽과 바닥의 빈 틈 위로 즐거이 방황하던 시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은 늘상 그렇게 방황하거나 유랑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 시간은 아직 한 사회가 요구하는 규율과 목적과 강제된 틀 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잠시 유예된 공간이기에 하릴없는 손들이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기간일 수 도 있다. 더구나 그림에 대한 배우기나 학습이 또한 강요되기 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체험과 시간은 이내 학교와 입시 등을 통해 망실되고 좌초된다.
최울가의 그림에는 망실 직전의 자유롭고 부드럽고 아득한 원초적 그리기의 추억이 자리한다. 아니 그런 추억에 대한 동경과 그 동경을 고착하고 싶다는 바램이 버무려져있다. 그는 어른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어른아이화가이고자 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모순적이고 한편으로는 희화적이며 절박하기도 하다. 화가들은 일정한 학습기를 거치면서 학습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그림을 처음 접하는 눈이 되고 붓과 물감을 처음으로 잡아본 손이여야만 한다. 아니 세상과 사물을 최초로 접해 본 인간이어야 한다. 그렇게 인습과 관습화된 시선과 마음을 항상적으로 유지해야 좋은 화가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경지나 수준은 무척이나 난감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경우 장욱진이나 중광처럼 그리는 이들도 있고 양달석이나 최영림 같은 이들도 있었다. 이중섭의 은지화나 엽서그림도 있으며 변종하식의 회화도 있다. 그들 모두 아동화적인 그림의 요소를 자기 회화 세계 안으로 품은 이들이다. 지금도 그 같은 그림의 세계를 동경 내지 연상시키는 많은 그림들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사조나 유행, 담론의 영향 밖에서 싱싱한 동경으로 맥박 치는 그림에의 열망이란 무척이나 오래되고 영원한 소망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연장선상에 최울가의 그림 역시 자리하고 있어 보인다.
미술사에서 어린아이 같은 그림을 그린 이들이 하나의 사조를 만들고 그것이 원시주의나 소박주의 혹은 동심을 자극하는 그림의 세계로 논의되어 오기도 했다. 도시화와 산업화, 문명의 진행이 가속도가 붙어 나가던 즈음에 그런 움직임도 비례해서 일어났음도 기억해본다. 그것은 미술을 본래의 상태라고 여겨지는 원시나 소박함, 야생과 동심적인 것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욕망일 수 도 있고 반문명적이고 반기계적인 문화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미술사는 항상 그 두 가지 요인들의 작용과 반작용 같은 것으로 도돌이표를 쳐왔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와서 낙서화나 새로운 벽화양식 등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그림들이란 생 각이다. 키스 헤링이나 바스키아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들의 그림은 기존의 미술이나 전시장 중심의 미술 제도를 부정하고 미술을 일상으로 부단히 회귀시키고자 한 이들이다. 동시에 과도한 현학성과 논리의 그물, 상업주의나 전문적인 제도의 틀에서 미술을 자유롭게 숨 쉬게 하고자 했던 제스처일 수 도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자신의 그림이 가장 일상적이고 본능적이며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와해시키고자 목적의식을 갖고 그렸던 것은 아니다.
최울가의 그림에는 위에 언급한 헤링이나 바스키아의 흔적들이 은연중 머물러 있다. 혹은 프랑스 신구상화들의 영향 또한 자리하고 있어 보인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그림 안으로 불러들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 그림을 그리고/쓰고 있다. 그의 그림은 그리기와 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자 칠하기와 긁어내기, 음각과 양각, 문자와 부호, 이미지와 상징 들이 동일한 비중을 갖고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에서는 두툼하게 칠해진 바탕 면을 유쾌하게 긁어나가면서 캔버스의 바탕 면을 확인시킴과 동시에 그렇게 드러난 빈 공간이 시각적 대상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없음이 있음이 되고 있음이 없음이 되는 모순적인 상황성을 연출한다. 물감의 층위를 벗겨낸 자국이 그림/선을 만들어 보이는 것이다. 붓질 이라기보다는 막대기나 꼬챙이로 긁어나가는 놀이,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일정한 두께/높이를 지닌 피부를 벗겨내는 은밀한 체험이 우선적으로 감촉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무척이나 촉각성을 자극한다. 여기에는 질감을 지닌 화면을 감각적으로 벗겨나가는 묘한 쾌감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돌멩이나 분필, 연필이나 기타 뾰족한 도구를 가지고 긋고 파고 새기던 어린 시절의 놀이, 유희의 추억들에서 연유하는 감정이 그것이다.
최울가의 작품은 캔버스표면을 일정한 두께를 지닌 단색의 색 층으로 마감한 후 그 위를 선묘로 장식하는 그림이다. 대부분 흰색물감을 얇은 두께/높이를 지닌 바탕 면/피부를 만든 후에 떠오르는 대로 무수한 형상과 그 형상사이로 선들을 채워나가는 그림이다. 몇 가지 인식되는 대상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여러 형상을 지닌 짧은 선들이 가득하다. 인식되는 대상들이란 다름아니라 일상적 삶의 공간에 위치한 사물과 동물의 형상 등이다. 어항과 강아지, 꽃과 자동차, 술병과 시계, 과일 등이 그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거주하는 실내풍경이기도 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생활과 결부된 대상들이기도 하다. 그런 형상들이 거침없는 드로잉으로 그려지고/ 긁혀져 있다면 그 사이로 자리한 다양한 선은 직선이거나 유선형 혹은 삼각형의 꼴이 잇대어진 선이거나 마치 안테나나 전기부호 등을 떠올리게 한다. 이 형상과 선들은 어린 시절 즐겨 그리던 만화적인 이미지들에 유사하다. 최울가의 그림에는 이처럼 자신이 고안한 특별한 몇 가지 부호와 특정한 형태를 지닌 선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고 이를 빌어 암호나 텍스트를 작성하고 있어 보인다. 분명 그 이미지들이 실내풍경과 겹쳐지면서 그의 그림은 정물이거나 풍경, 혹은 추상적인 어떤 자취로 떠오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림과 만화, 회화와 낙서 사이에 동시에 놓여져있다.
반복하자면 그의 그림은 회화와 저부조사이의 완충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촉각적인 그림이자 일종의 벽화이기도 하다. 빈 벽이나 땅바닥에 무심히 그어놓은 자취나 낙서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사각형을 촘촘히 메꿔 나가는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놀이의 흔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놀이와 유희, 혹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영원히 젊은, 항구적으로 어린아이의 손과 마음을 닮고 싶다는 바램이 그의 그림 안에 녹아있다는 생각이다. 그 생각과 감각, 손들이 예술의 유희성과 순수성이란 고정되고 박제화 된 신화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고유한 結晶으로 자리할 수 있느냐는 남겨진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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