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의 등가적 표현을 통한 일상의 일기 - 최울가의 작품세계 - 오세권 (미술평론가)
- woolgachoi
- 2017년 1월 11일
- 3분 분량
근래 들어 국내 주요 전시에서는 영상 설치 등 테크놀로지 미술들이 줄어들고 회화의 표현이 이전과 같이 회복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다양한 표현들이 보여진다. 그 가운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나타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품화 하는 팝적 경향을 비롯하여 극사실적인 작품들이 대체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흐름들이 2000년대 초반기 한국미술에 있어서 검증하고 안착 시켜야 할 중요한 흐름인지 아니면 유행의 흐름으로 잠시 유행하다 흘러가는 것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주변에는 서구나 주변의 유행적 흐름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하여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나아가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
최울가도 시대적 유행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꾸준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1980년대 작품과 1990년대 작품 그리고 2000년대의 작품 등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세 부류의 작품세계는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경향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작품의 변화 가운데 2000년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낙서와 같은 일상성의 기록적 특성은 1980년대부터 그의 작품 저변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볼 수 없으나 1960-70년대만 하여도 시골에는 흙벽 위에 엷게 발라놓은 넓은 시멘트벽이 있었고, 짚을 썰어 황토흙과 섞어서 마치 모르타르처럼 발라놓은 넓은 흙벽이 있었다. 어린이들은 그러한 벽 위에 분필이나 크레용, 못 등으로 낙서를 하듯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동네 마당 곳곳에 어린이들이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패차기, ...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는 단단하게 굳은 땅으로 된 공간이 있었다. 그 땅 위에 못이나 돌 그리고 분필이나 크레용 등으로 놀이판을 그리거나 흙을 파며 낙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흙벽이나 땅 바닥은 시골에서 좋은 캔버스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최울가의 작품을 보면 1960-70년대 시골 어린이들이 흙벽이나 땅에 그려대던 낙서가 연상된다. 그 낙서에는 이데올로기나 거대한 예술 이론이 담겨 있지 않다. 어린이들의 순수성과 원시성이 담겨 있고 일상적 이야기들이 생활일기와 같이 나타나 있는데 최울가의 작품에서도 어린이 그림과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대상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고 그 특성만을 간결화된 선으로 나타내는 방법과 어린이나 원시인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정면관적 표현의 특성이 생활 일기와 같이 서술적으로 평면화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일상성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날의 연속성을 말하며 삶의 울타리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경험적 생활을 말한다. 생활속에서의 일상성은 반복, 흥분, 향락, 슬픔, 기쁨, ... 등 다양한 삶의 형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속에서 인간들은 각기 자신의 삶을 익명적으로 엮어간다. 대개 ‘일상성’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존재론적 입장이나 사회학적 측면에서 논의하여 인간의 경험적 삶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학술적 측면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일상성’이란 ‘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최울가의 작품에서 바로 이러한 일상성의 모습들이 일기와 같이 표현되고 있는데 집안과 집밖에서 살아가는 생활의 현장들이 마치 스케치 하듯이 표현되어 있다.
최울가의 작품을 크게 분류하여 보면 집안의 실내풍경을 그린 것과 집 밖의 실외풍경을 그린 것 그리고 실내. 외를 동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실내를 그린 것을 보면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집안의 것으로 소형시계, 과일, 달력, 어항, 찻잔, 꽃, TV, ... 등이 배치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성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외부를 그린 것을 보면 새, 의자, 나무, 헬리콥터, 저수지, 버스, 신호등, 건물, ... 등 다양한 사물들이 평면적으로 배치되면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실내. 외를 동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과 같이 집안에 있어야 할 사물들이 실외의 사물들과 함께 하고 있어 실내. 외의 위치가 일정하지 않다. 마치 사물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듯 표현한 것이 환치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작품 내에는 대부분 사람이 설정되어 있다. 집안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서있는 사람 등 사물과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외부에서도 낚시하는 사람, 거리를 걷는 사람, 헬리콥터를 타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람은 사물들과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일상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최울가의 작품은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에 접근하여 명확하게 설명하려 하거나 묘사하려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사물들을 원근감 없이 평면적으로 나열하여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스럽게 접근하여 해석하는 표현방법을 취하고 있다. 어느 대상을 중심으로 소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모두 평등하게 배치하여 대상끼리 얽혀진 일상사를 자연스럽게 해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점의 표현에 있어서도 원근법이 없으며 옆에서 본 형태, 위에서 본 형태가 구별 없이 한 화면 속에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마치 낙서하듯이 사물들을 나열하여 그리는 것에서 나타나는 특성으로 보인다.
한편 표현 방법을 보면 마치 스크래치를 하는 듯한 표현이 중심이 된다. 예를 들면 어두운 바탕색을 먼저 칠하고 그 위에 흰색을 칠한다. 그리고 위에 칠한 흰색이 마르기 전에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드로잉을 하여 원래 칠해진 바탕색이 선이나 색면으로 나타나게 한다. 다음으로 부분적으로 색채를 더하여 변화를 주는 표현방법을 취한다. 여기서 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선은 하나의 획으로 표현되어 서예의 표현과 같으며 나아가 드로잉 하듯이 표현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최울가의 작품세계를 보면 평면적 화면 속에 사람이나 동물, 기계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들을 동격으로 배치하고 일상적 생활의 모습들을 일기와 같이 펼쳐놓았다. 최울가는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하여 모든 사물은 평등하며, 삶이란 사물들이 서로 얽혀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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