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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울가의 아나키적인 세계 - 나카하라 유우스케

  • woolgachoi
  • 2017년 4월 12일
  • 4분 분량

벌써 8년 전의 일이지만, 프랑스의 라스코(Rascaux), 그리고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을 보러 간적이 있었다. 이 두 곳의 동굴은 구석기시대에 그려진 동굴벽화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장소로서 그 동굴벽화를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두 곳의 동굴화 모두 사진으로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 그려진 동물의 개괄적인 모양새는 어디까지나 일종의 추상화인 형태로 그려진 것은 잘 알 수 있지만 사진만으로는 그 표면의 질감이나 감촉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만약 이것이 유화라면 평소 많은 유화를 보아왔기 때문에 사진으로부터도 그 화면의 질감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굴화는 그 때 까지는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진으로 부터 그 질감을 유추 해 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이것 때문에만 동굴을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이질감에 대한 것은 본인의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수 만 년 전에 그려진 구석기시대의 동굴화는 우리 인류에 있어서 최초의 그림이었다. 우리들의 선조들인 크로마뇽인과 그 생존의 시기가 겹쳐 있다고도 하는 네안데르탈인은 그림을 남기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동굴화는 말 그대로 우리 인류의 독자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본 동굴화는 대부분이 말이나 들소와 같은 동물들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려진 기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불 수 있다.

첫 번째는 뾰족한 돌로 석회질의 바위 표면을 긁어 선을 나타내고 그 윤곽으로 동물을 나타낸다.

두 번째는 산화철 등을 분말로 만들어 그것을 안료로 사용하여 동물의 윤곽을 그린다.

세 번째는 같은 안료를 물감과 같이 사용하여 동물의 몸통 전체를 칠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최초에는 선각이었고 두 번째는 선묘, 세 번째는 채색화라고 할 수 있다.

또 달리 말하자면 맨 처음에는 조각적이었고 두 번째는 드로잉, 세 번째는 페인팅이라고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라스코 동굴화에서는 이 세 가지 기술이 모두 보이지만,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세 번째의 방법이 거의 지배적이다.

직접 손을 사용하여 도상을 나타낸다는 것으로만 말하자면 이러한 기술은 구석기시대에 이미 등장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 울가의 아틀리에에서 많은 작품을 보았을 때 본인은 문득 이 동굴화를 떠올렸다. 그것은 이 화가가 일찍이 <원시주의>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그림의 질감이 동굴화를 환기 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예를 든 동굴화의 세 가지 기술은 구석기 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치졸하다거나 단순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돌이나 나무에 선각을 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으며 하물며 드로잉이나 페인팅에 관해서는 말할 것 까지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같은 시대에 착색기술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이 세 가지 기술에 관하여 이것을 만약 유치한 단계의 기술로부터 보다 고도의 단계로의 변천 과정이라고 만 본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그림이라고 부르는 형식의 페인팅이 제일 높은 기술이고 드로잉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기술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시작된 수묵화는 드로잉이라고 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묵화는 유화보다 한 단계 아래의 것이라고 말 하는 식이 되어버린다.

최 울가의 그림은 유화물감, 아크릴 물감 그리고 연필, 파스텔 등 을 이용하여 그려져 있지만 가장 근본 적인 기술은 드로잉에 틀림이 없다. 천이 아니고 한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드로잉이라고 하는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드로잉이라고 하는 기술과 한지와의 조합을 이 작가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돌아보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도 도상 표현은 드로잉을 토대로 하였다고 말 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드로잉은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발명한 기술이고 그것을 특정 지역에 연결시켜 본다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최울가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동굴화를 상기 시킨 것은 그 드로잉 이라고 하는 기술이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그 드로잉이라고 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어떤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놀라울 정도로 아나키한 세계이다. 아나키적 이라고 하는 말은 화면에 등장하는 다채롭고 다양한 이미지 들이 결코 단계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 집, 자동차, 배, 실제로 있는 동 식물, 가공의 동 식물, 의복, 가정용 기구, 권총 등등. 그것들의 중요도에 관한 순서는 완전히 무시되고 더욱이 크기의 구별이나 비교의 기준도 완전히 무시하고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 아나키적인 세계는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를 일종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는 점이 묘하다.

오늘날 회화의 분류로 말한다면 이 작품은 표현주의라고 하는 구분에 속할 수 있음이 틀림이 없다. 굳이 같은 유형의 표현주의 작품을 찾아본다면 그루프 코브라(Cobra)의 작품 정도 일 것이다. 그러나 최 울가의 작품은 참으로 밝은 분위기의 표현주의적인 그림이다.

만약 그의 작품에 드로잉의 기술이 관련하고 있고 이것이 페인팅으로서 그려져 있다면 밝은 분위기의 표현주의 그림으로 될 수 있을지 없는지 의심스러운 기분이 든다.

이 화가는 프랑스에 오래 살았고 그 다음에 뉴욕에서 산다고 하는 경력의 소유자이다. 1980년대 후반의 유화에서도 이미 아나키 적인 경향이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보다 확실해지는 것는은 프랑스로 가고 부터이다. 나는 이 작가가 프랑스 체재 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그림에의 눈을 떠갔는지 전혀 모르지마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그의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친것만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근작에서는 이 아나키적인 세계에 어느 정도 질서와 같은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기하학적인 정형적인 모양의 등장이 이를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질서와 같은 것이 작품 속에 들어감과 동시에 작품의 표현주의적인 성격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부분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최 울가의 그림은 참으로 컬러풀한 작품이다. 그러한 요소가 아나키한 세계를 한층 더 불러일으킨다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동시에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는 선, 이것도 최 울가의 작품을 특징짓는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다

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아나키적인 세계라는 말을 사용 하였다. 한국에는 이런 경향의 작품이 최 울가 이외에도 또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서는 본인은 별로 아는바가 없지만 본인은 최 울가의 작품은 극히 유니크하게 보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동굴벽화 이야기를 하자면 동굴벽화에서 보이는 동물의 무리들도 극히 아나키적이다. 원래 그 벽화는 몇 세대에 걸쳐서 차례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기의 비례도 완전히 무원칙이다. 단 색이 빨강, 검정 갈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밝은 느낌은 없다. 그러나 동굴벽화를 그린 그들의 기술이 오늘날의 최 울가의 작품에 살아있고 아나키적이고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작품세계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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