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질서와 질서 속의 혼돈 (이진명, 前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woolgachoi
- 2021년 4월 3일
- 5분 분량
“혼돈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질서이며, 질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혼돈이다.” 이 문장의 앞부분은 모던의 신념에 관한 것이다. 질서를 방해하는 혼돈의 현상들, 가령 환영이나 신비, 미신의 어두움을 이성의 빛으로 관통하여 예측할 수 있는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모던의 신념이었다. 위 문장의 뒷부분은 모던의 절망에 관한 것이다. 세계현상에 질서가 부여될수록, 학문이 강화되고 질서를 파악해내는 규구준승(規矩準繩)이 정교해질수록 신념이 투철해지지만, 세계는 오히려 혼돈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모던이 쟁취해낸 규구준승의 그물코를 더욱 엄밀하고 정교하게 짜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학자와 인문학자가 그랬다. 또 하나는 모던의 패러다임에서 배를 갈아타야 한다는 논의였다. 이른바 포스트모던이라는 수식이 붙은 후기구조주의자들과 해체주의자들이 그랬다. 그러나 이제 학문이나 과학의 영역에서 이 둘의 기반은 상당히 침식되었다. 이제 인문주의 학문과 진리를 찾는 과학이 가뭄의 시기를 맞은 이래로 다원주의라는 잔물결이 현상을 이룬 뒤 지성사(history of intelligence)라는 주류는 상당히 메말라버렸다. 인문주의는 더 이상 인간만을 이야기할 수 없으며 과학은 진리를 찾는 학문이 아니라, 진리를 제작하는 학문으로 변모했다. 예술도 이러한 물결의 흐름에 많은 부분 동참한다.
최울가 작가는 이러한 빛과 어둠이라는 두 개의 진자의 끝에서 부단하게 진동하며 작업해왔다. 최울가의 연작 시리즈가 화이트와 블랙으로 대표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울가 작가가 화두처럼 유의(留意)하여 마음에 두는 말은 현대성(modernity)을 넘어서 지금 이 시대를 지칭하는 동시대성(contemporaneity)에 관한 낱말이다. 아직은 동시대성에 관한 적당한 용어가 나오지 않았다. 탈역사(post-history)나 다원주의(pluralism)라는 말로 이 시대를 표현하기에는 아직 무언가 부족한 감이 있다.
사람은 우주만상을 곧바로 직시할 수 없다. 무언가 매체(medium)나 모델(Abbild), 혹은 프레임(frame)을 거쳐서만 바라볼 수 있다. “태초에 한 사람만이 자유를 보장 받는다. 이후에는 소수만이 자유를 얻게 된다. 급기야 나중에는 모든 이가 자유롭게 된다.” 헤겔은 처음에 제왕만이 자유를 보장 받는다고 보았다. 이 자유를 보장해주는 프레임은 바로 신권이었다. 대사제와 제왕의 결속이 세계를 이끌었다. 이후 소수의 부르주아가 자유를 얻었다. 이들의 자유를 얻게 해준 주체는 이성이라는 도구와 이성이 선사해준 부르주아 자본이었다. 헤겔의 예상대로 세계가 진행된다면 이제 모든 이가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시대가 도래하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자유는커녕 오히려 혼돈의 부조리(absurdity)가 만개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최울가 작가는 이 시대를 자유와 부조리가 동시에 에워싸고 있는 샌드위치의 회색지대(gray zone)이라고 정의한다. 작가의 그림 세계는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최울가 작가는 두터운 물감을 캔버스에 바른다. 보통 흰색이나 검정색 물감을 사용한다. 물감이 마르자마자 캔버스 위로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고 색을 입히며 드로잉 작업을 구가한다. 그림의 층위는 그다지 두텁지 않다. 그 그림은 반구대암각화를 연상시킨다. 최울가(崔蔚家)라는 이름이 울산 사람이라는 뜻이듯이, 반구대는 작가의 예술적 정서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떨 때는 아이들의 낙서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목적이 모방인 미메시스(mimesis)에 있지 않고 포이에시스(poiēsis)에 있듯이, 최울가 작가 역시 포이에시스를 극한까지 추구하고 있다. 포이에시스란 무언가를 만든다는 뜻으로, 인간이 세상에 반응하는 기본 능력으로서 자기와 세상 사이에 형태 만들기(shaping)와 예술 만들기(art-making)를 통해 서로 교감하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창조적 활동을 뜻한다. 그렇다면 포이에시스는 세계에 대한 부단한 말 걸기이며 이 말 걸기(대화)의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총체적 감수성을 뜻한다. 최울가 작가가 창조한 포이에시스 속에는 감수성과 의미로 가득하다.
최울가 작가의 회화세계에 등장하는 일상적 소재들은 선형회화로 간소화되며 누구나 알 수 있는 형상들로 화면 가득 채워진다. 인물이 좌측이나 우측 때때로 중앙에 배치되며, 개ㆍ새장 속의 새ㆍ좁은 물병 속에 갇힌 물고기ㆍ수도꼭지ㆍ꽃병ㆍ꽃ㆍ시계ㆍ전등ㆍ가구들ㆍ벌레ㆍ수박ㆍ바나나ㆍ딸기, 그리고 때때로 수많은 눈들이 화면 가득 배치된다. 이 사물들은 맥락상으로 보았을 때 서로에 대한 연관성은 상당히 적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연관되어있다. 인물은 작가 자신일 확률이 높다. 개는 오랫동안 지속되며 고독했던 이국에서의 작가 생활에서 작가에게 말을 걸었던 유일한 반려(伴侶)였을 것이다. 좁은 물병에 갇혀있는 물고기, 새장 속의 새는 자유의 박탈에 대한 상징이다. 화면은 가끔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로 채워진다. 수도꼭지는 작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최소한의 에너지를 가리킨다. 꽃병 속의 꽃은 작가의 미(美)에 대한 열망이며, 시계는 흐르는 시간을 화면에 영원히 붙들고 싶은 작가의 의지이다. 전등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빛이며 수박ㆍ바나나ㆍ딸기와 같은 과일은 작가 자신의 시들지 않는, 싱싱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다. 아무런 연관 없는 것 같은 사물들로 이루어진 화면 구성이 사실은 작가의 이야기로 가득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의미체계들은 형식과 깊이 있는 관계를 갖는다.
앞서 ‘혼돈 속의 질서와 질서 속의 혼돈’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 모더니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질서가 하나둘씩 잡힐수록 보이지 않았던 혼돈이 다시 찾아온다. 세계에 대한 혼돈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말해왔다. 최울가 작가는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솔직한 삶으로부터 이 둘 사이에서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변증을 찾고자 했다. 혼돈 속의 질서 찾기는 모더니즘의 사명이다. 모더니즘이라는 유악(帷幄)은 순수성이라는 의제(議題)를 무기로 장착했다. 또 한 가지 환원주의(reductionism)라는 가공할 위력의 파워를 구축시켰다. 또 하나 본질주의(essentialism)라는 대서사로 예술계를 재단했다. 본질주의라 함은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 회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촉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회화라는 매체, 조각이라는 매체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험하는 예술가와 그의 예술만을 의미 있다고 보았다. 회화의 본질은 평면성(flatness)에 있는 한편, 조각은 물질성(materiality)에 있다. 반면에 모더니즘은 본질주의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고 그 환원된 순수성에서 벗어나있는 예술가나 그의 예술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성전(sanctuary)으로부터 제외시키는 폭력성을 연출하기도 했다.
위에서 말한 모더니즘의 세 가지 요소는 정점으로 차달았고 서구 백인국가의 엘리트에 의해서 잠식되었다. 비백인 국가의 예술가들은 논웨스턴 모더니즘(non-western modern)이라는 언어를 개발했으나 언제나 주변부로 제외되기 일쑤였다. 모더니즘의 순수성 이면에 도사리는 폭력성으로부터 여러 가지 비판적 사고가 싹을 트고 열매를 맺었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경계를 넘으려는 의지에서 모더니즘이 경주했던 독창성, 순수성, 매체의 본질주의라는 대전제를 의도적으로 흔들었다. 차용ㆍ반복ㆍ절취ㆍ혼합ㆍ절충주의라는 기치(旗幟)를 내걸고 모더니즘이 가고자 했던 질서에 반발했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이 논리는 질서로 가고자 했던 모더니즘의 절망을 일찍부터 간파했던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포문을 열었고 6,70년대 자유주의 사상의 기저(substrate) 속에서 세계적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문제는 이 운동이 대단한 확장성을 지니고 많은 경향과 형식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성을 지니며 현대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반면, 독창성(originality)이나 순수성이라는 미적 토대를 보장 받지 못한 결함이 있다. 전자의 모더니즘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갈구하다 수많은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사고를 성전 바깥으로 내좇았으며, 후자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질서 속에서 불어나는 혼돈을 포용해내는 아량을 베풀었지만, 미적 권위라는 측면에서 의문의 눈초리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최울가의 회화세계는 독창성이라는 미적 권위와 포용성이라는 관대함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탄생되었다.
최울가 작가의 세계는 100% 자신의 이야기이다. 울산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는 울가(蔚家)는 프랑스에 유학하기 이전 시기부터 모더니즘 회화에 주력했다. 1984년도 작품 「Agonizing People」은 두터운 마티에르의 푸른 물감 속에서 한없이 침잠해버리는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표현했다. 1993년도 작품 「A Game at Night」 역시 대비되는 원색과 절충적 간색의 표면이 관람자의 시선을 끝없이 순환시키고 있으며 걸쭉한 붓질과 강렬한 오일 바의 터치가 표현주의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뉴욕 소호(South of Houston)로 작업 공간을 옮기고 나서 최울가 작가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두 가지 물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흐름을 타고 싶어 했다.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이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내용을 확보하는 동시에 모더니즘이 내세우는 미덕인 형식적 독창성과 매체 본질주의를 모두 보장받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확실히 작가는 어렵던 옛 시절의 자기부터 유학시절의 고단함과 소호로 이주하면서 얻었던 작업의 희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철저히 바르고 솔직한 자기의 감정만을 화면에 남겼다. 따라서 표현주의적으로 발전했다. 표현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회화라는 매체의 본질인 평면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작가는 동시대성인 포용성을 발휘했다. 사람과 개, 일상사물과 동식물, 무기체의 사물이 존재론적 지위의 차별 없이 하나로 통일되었고 회화라는 문법에서도 차별은 포용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이나 담론의 이야기는 뒤로 하고 어째서 최울가의 작품이 매력 있는지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18세기 대학자 뷔통 백작(Georges-Louis Leclerc de Buffon, 1707-1788)은 “스타일은 그 사람 자체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작가의 스타일은 그 사람 자체이다. 스스로 물려받은 것이며 인격 그 자체이다. 이것은 배울 수도 없거니와 스스로 채워낼 수도 없다. 14세기의 중국 철학자 방효유(方孝孺, Fang Xiaoru, 1357-1402) 역시 “옥돌[璞]을 잘 보는 사람은 그 형태를 보지 않고 색을 본다. 사람을 잘 보는 사람은 사람의 재주를 보지 않고 사람의 기세[氣]를 본다. 형태는 속일 수가 있다. 그러나 색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재주는 억지로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기세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술가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관점은 같다. 예술가의 능력은 스타일에 있고, 스타일은 타고난 기세이다. 최울가 작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회화 형식은 1980년대에 만들었던 그것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기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다. 최울가 작가는 스타일, 즉 기세가 타고난 사람이다.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작가는 아무리 어려운 형편의 생활 속에서도 전혀 근심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누추한 작업실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조건 하나로 언제나 즐거워했다고 한다. 언제나 스스로를 넘어서고자 노력했으며, 물감 바르고 선을 긋고 형상을 만드는 모든 순간 속에서 기쁨을 취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기세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작가의 기세가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진명, 前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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